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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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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6. 12:05 오롯/문화 누리기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많은 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적우의 새 미니앨범이 3월 15일 음원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신곡 '사랑아', '귀환, 'Fallin'과,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선보였던 곡들 가운데 본 미니앨범에 가장 어울리는 '열애'와 '이등병의 편지'를 다시금 녹음하여 수록해 총 다섯 곡이 수록되었습니다.



 더 편안해진 소리와 그 소리로 읊어지는 나지막한 이야기
 적우의 정규앨범 또는 리메이크 앨범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앨범은 이전보다 조금 더 보컬과 곡의 분위기가 편안해졌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더욱이, '나는 가수다' 무대만으로 적우를 접했던 이들이라면 적우의 보컬이 이렇게 부드러웠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나는 가수다' 무대 이후 첫 앨범이다보니 '나는 가수다' 무대와 비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우의 보컬은 저음부의 안정적이고 강한 힘과, 탁성과 거친 소리(철성)를 넘나드는 보컬 색, 길게 뻗어나오는 보컬에 잘 녹아든 울림으로 대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가운데, 적우는 '나는 가수다' 무대를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보컬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애썼으나, 보컬이 더 강해진 대신 덜 안정적이었으며, 거친 소리를 한을 쏟아내듯 퍼부어대던 대신 보컬 운용에 다소 기복이 있었으며, 이 가운데 그녀의 가장 큰 장기이자 가장 호소력을 전해줄 수 있는 무기였던 울림은 길게 뻗어나오는 보컬이 안정적이지 못한 탓인지 충분히 내보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이등병의 편지' 무대에서 그러한 일면을 조금이나마 선보였으나, 이미 적우의 리메이크 앨범을 들어온 이들이라면 다소 아쉽게 느껴졌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나는 가수다' 시즌 2를 마치며 적우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보컬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였음이 아쉬웠던, 저와 같은 이들에게 적우는 이번 미니앨범을 통해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더 강하고 센 소리를 주로 선보이던 적우는, 이번 미니앨범에서는 그러한 강함 대신 그녀 특유의 호소력이 돋보이는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적우의 보컬은 이러한 곡들이 가진 이야기들을 충분히 섬세하고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었습니다.

 더불어 곡과 보컬이 전반적으로 다소 더 담백해졌습니다. 이는 보컬에 힘을 싣기보다는 좀 더 섬세한 표현을 담아보고자 노력하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는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적우에게 아쉬웠던 부분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1번째 트랙 : 사랑아(타이틀곡)

 타이틀곡 '사랑아'의 경우,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어쿠스틱한 악기들의 조화가 곡 전반에 잘 배분되어 곡이 전개되는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떠나보낸 여인의 애뜻한 감정을 드러내는 듯 보이나 그저 사랑하는 사람만을 향한 가사가 아닌 자신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성찰하고 다짐하는 듯한 일면을 내보이고 있으며, 이를 적우 특유의 섬세함과 호소력 짙은 보컬을 통해 단순히 한 곡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듯 전하며 마음을 전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읊조림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에서 봄과 초가을을 향취를 느끼게 하는 섬세한 읊조림보다는, 조금 더 투박하지만 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전해주는 가을의 진한 향취를 잘 담은 듯한 적우 특유의 보컬을 잘 나타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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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째 트랙 : 귀환

 두번째곡 '귀환'의 경우, 이전의 적우의 곡들을 들어왔던 이들이라면 생소하였을 '사랑아'에서의 보컬에 비해 조금 더 익숙한, 원래의 적우의 보컬을 잘 드러낸 곡입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 분위기 전개에 동양 악기들의 차용과 다소 블루지한 적우의 보컬이 잘 어우러져 독특한 아우라를 내는 곡을 완성해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적우의 보컬이 라운지 음악에 잘 맞는 이유를, 그녀가 가진 탁성과 음색이 지닌 블루지한 느낌이 차칫 가벼워지기 쉬운 라운지 음악에 무게를 실어 한층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7080 세대의 곡들에서도 그 호소력을 한층 강하게 해주었고, 적우의 보컬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가수다'의 '어둠 그 별빛' 무대에서 선보인 애절함을 더하는 동양 악기와 탁성인 적우 보컬의 어우러짐이 상당히 괜찮다 생각하였었는데, '귀환'을 통해서 위에서 언급한 모든 부분들을 잘 조화시키려 고심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좋은 결과물이 나와, 애절한 듯 하나 잘 절제된 느낌의 곡 분위기를 더욱 잘 살린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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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번째 트랙 : Fallin'

 '나는 가수다'에서 적우의 보컬 디렉팅과 코러스를 맡았던 고흐의 피쳐링으로 완성된 곡은, 이지리스닝 계열로 앞선 두 곡에 비해 더욱 적우의 강한 보컬이 양보된 듯한 느낌의 곡입니다. 고흐의 보컬이 전면에 펼쳐지고 있으며, 적우는 이를 받치는 듯한 형식의 곡 전개는 곡이 표방하였을 느낌을 충분히 잘 살리고 있어 보입니다. 

  이 곡은 지난 몇 달간 함께 무대를 꾸려온 케이사운드 콰이어와 고흐와의 우정어린 인사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곡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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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째 트랙 : 열애

 '나는 가수다' 첫 무대에서 선보인 '열애'를 재녹음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앞선 세 곡과 마찬가지로 한층 담백해진 느낌의 보컬 곡입니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의 한 서린 애절함이 담긴 듯한 거친 느낌이 조금 더 귀에 잘 맞는듯 합니다. 



 5번째 트랙 : 이등병의 편지

 '나는 가수다' 무대의 곡 중에 본 미니앨범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됩니다.



 총평
 적우의 이번 미니앨범은 '나는 가수다 시즌 1'를 마친 후, 적우가 못내 아쉬웠던 점들과 또 하나의 방점으로 삼고갈만한 부분들을 채워 담았다는 점에서 일종의 프로젝트 앨범과 같은 느낌을 전해줍니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적우의 보컬에 대해 불편함, 또는 거리감을 느꼈을 이들에게는 조금 더 편안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앨범이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적우의 곡들 오랫동안 들어온 이들에게는, 조금 더 편안해진 적우의 보컬에서 이전 앨범들에서의 짙은 감정 대신 편안함이 느껴져 좀 더 가깝고 조금 더 위안으로 다가오는 앨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굳굳히 견디고 이겨내온 적우가 선보인 앨범으로서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의 가사들이 잘 풀어져 있어 앞으로의 그녀를 더욱 응원하고 또 지켜보고 싶게끔 만드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도, 이번 미니앨범도 이전의 적우 앨범에서 보여졌던 적우의 모든 장점을 다 살려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험들이 적우의 보컬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적우는 '나는 가수다' 무대를 통해 이전보다 한층 강한 힘을 가진 보컬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번 미니앨범을 통해 보다 더 섬세한 보컬을 향한 노력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적우의 다음 앨범을 손꼽아 기다려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다음 앨범에서는 상당히 괄목할만한 적우의 성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인 '사랑아'는 상당히 잘 나온 곡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적우의 곡을 '나는 가수다' 무대를 통해서만 들어오신 분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삶의 위안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이 곡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제가 느낀 적우의 음악에 담긴, 진심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길 바라여 봅니다.
 
posted by soulian
2010. 11. 14. 01:12 오롯/문화 누리기



 * 알리는 말씀
 이 감상평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상문 중반 이전까지는 그러한 스포일러가 여러분들께 노출이 되지 않도록 신중함을 기울여 글을 작성하였고, 스포일러가 될 부분부터는 그 전에 미리 공지를 하여 읽으시는 분들께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영화를 보고자 망설이는 분들께서는 편히 감상평을 읽으시다가 제가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보시면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둔 곳 이후로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리뷰를 더 읽으시거나 또는 영화를 다 보고 나셔서 다시금 읽으시면(아, 아마 잊으시겠지만^^;)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생동감이니까요^^
 


 시작하며
 오늘 영화 '초능력자'를 보고 왔습니다.
 이전에 본 영화가 무엇인지 가물가물할만큼 요근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질 못 했는데,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간만에 극장 나들이'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바빠졌다는 것이니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영화 볼 여유도 없이 팍팍히 사니 서글프다 해야 하나 생각도 들지만, 뭐, 어찌 되었건 전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우리 시대의 의인들을 아십니까?

 일본 지하철에서 철로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고 일본 전역을 숙연하게 만든 이수현 씨. 역장으로 근무하던 중에 철로에 들어간 아이를 구하며 한 쪽 다리를 잃은 김행균 씨. 그 외에도 우리 주변을 알게 모르게 지켜주고 있는 수많은 의인들. 
 그들은 때때로 만인의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가끔은 '바보'라는 취급을 받을만큼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기도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결말은 그러한 선행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망가뜨리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이 망가지면 '영웅' 대접을 받기 쉽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바보'가 아니될 사람은 없겠지요.
 특히나 이런 '바보'는,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보다 올바르다고 믿는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쉽게 붙여지는데요.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바보'라고 불리는 세상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합리화하려고 해도 비겁한 세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 역시도 그런 비겁함에 어찌 보면 몸을 기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영화 초능력자 포스터 : 남자들은 또 한 번 오징어가 된다.



 영화 '초능력자 줄거리'

 '인생엔 세 가지 고비가 존재한데.'
 한순간에 그 세 가지 고비를 넘겨버린 순박한 남자 '임규남'(고수).
 너무도 순박해서 동료가 자신의 돈 천 만원을 들고 슝 도망을 쳤음에도 자기가 그냥 준거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 남자는 동료가 사준 생일 선물인 후진 점퍼를 입고 기뻐하던 그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여서 병실 신세를 지며, 그와 동시에 일하던 폐차장에서 짤려 버립니다. 이쯤 되면 이제 더는 고비가 없을 것 같았는데, 진짜 고비가 그의 앞을 찾아옵니다.



 '인생이 뭐 그런거지. 대리, 과장 승진도 해가고 그렇게 월급도 오르고 말이야.'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부상에서 회복한 규남. 그는 78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각종 정보지를 뒤적거리다 '유토피아'라는 전당포를 찾게 됩니다. 전당포 사장은 그에게 약식 인터뷰를 하더니, 슬쩍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빨간 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에게 대리를 맡깁니다. 이게 왠 떡. 평생동안 어선, 폐차장 등의 일만 전전해오던 그에게 비록 단 둘 뿐인 전당포이지만 대리에, 승진까지 있다니.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 전당포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귀신은 안 만져지는데... 그럼, 도깨비...?'
 사실 혼자여도 될 전당포에 왠 대리 직급 직원? 알고보니 사장님은 무언가 기이한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장부에서 비어버린 상당히 큰 돈. 사장은 그 사라진 돈의 비밀을 찾기 위해 큰 맘을 먹고 전당포에 최첨단 감시장비(?)인 CCTV까지 설치하고 최첨단 무기(?)인 전기충격기까지 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 우리 사장님 살려내!'
 '이 사람들, 모두 너 때문에 죽는거야. 다 너때문이라고.'
 사라진 돈은, 자신이 보이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 초인(강동원, 극 중 본명 알 수 없음)의 짓이었습니다. 전당포에 들어와 자신의 초능력으로 사장을 조종해 유유히 돈을 뺏어 간 것이었지요.

 규남의 옛 회사 동료들까지 찾아와 시끌벅적한 어느 날, 초인이 다시금 전당포를 찾습니다. 모두가 초인의 초능력에 의해 제어당하고 순조롭게 일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규남이 깨어납니다.  규남에게는 초인의 능력이 통하질 않는군요. 평생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한 초인은 다른 이들을 조종하여 규남을 제거하려고 하고 그 와중에 사장이 초인의 초능력에 의해 조종을 당하던 중에 죽게 됩니다.

 유일한 증거는 사장님이 설치한 CCTV의 녹화 화면. 그 화면을 통해 초인을 경찰에 신고하고 초인을 잡으려던 규남은, 그러나 초인의 능력에 의해 계속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초능력자인 초인과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언제봐도 영화 속 떼샷은 영화로 볼땐 덜 어색한데 정지화면으로 보면 어색하다. 

 

 영화의 키포인트



 강동원의 신비스러움과 고수의 순박한 눈이 만들어낸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
 범접할 수 없는 강동원의 아우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왠 여자분 한 분이 함께 본 친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 나 이제 강동원 싫어할 거 같아."
 악역인 강동원이 자신의 강점인 아우라를 통해 내비치는 멋진 캐릭터 표현을 떠올리니, 이 여자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하고자 한 첫 동기는 영화 포스터에 나온 고수의 날카롭지만 순박함이 깃든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고수는 멋진 마스크와 빠지지 않는 연기력에도 잘 뜨지 않는 배우 중 한 명인데요(이런 류로 주진모 씨 등이 함께 많은 이들-아마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지요). 영화는 그런 고수의 마스크에 딱 알맞은 캐릭터를 완성시켜놓았습니다. 
 영화 속 규남은 선한 마음에 초인을 쫓으며 보이는 돌진력까지 영화 내내 야누스적인 매력으로 영화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고수의 눈빛은 순간순간 사슴과 치타를 오가며 그런 규남의 캐릭터의 완급을 잘 조절해나갑니다.

 강동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취미가 두문불출이라 알려져 있고, 얼마전 인터뷰에서도 "사생활은 보장받고자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비주의를 가진 강동원은, 자신의 신비주의적인 캐릭터성을 초인에게 잘 맞추어 악역임에도 분노보다는 보는 이의 입을 벌리게 만드는 카리스마로 영화에서 큰 존재감을 보입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이런 잘 만들어진 캐릭터로 영화를 얼기설기 엮어가며 상당히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영화가 그려내는 현실에 대한 판타지 변주곡
 혹자는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그러한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느낄 법한 캐릭터의 극대화와 초능력이란 소재, 그리고 제한된 수준의 흐름으로 그리 느끼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만(결말도 한 몫했겠지요?), 저는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영화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수가 맡은 임규남 역과 강동원이 맡은 초인 역은 각각 자신의 캐릭터를 정말 멋지게 드러내어 어린 시절 만화에서 만나던 정의파 주인공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악인을 영화 속에서 즐기게 합니다. 

 더불어 현실에서는 있을리 없는 비현실적인 초능력-보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건물에서 뛰어내리게 만들 수 있는-과 그런 초능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만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회복력과 힘과 명석한 판단력(대체 왜 이런 판단력으로 인생을 그리산건지 모르겠어요)을 지닌 또 하나의 비현실적인 범인(평범한 사람)의 용호상박 대결은 만화 이상의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더불어 이 영화의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결말은 아마도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폄하'할만한 여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개인적으론 만화를 좋아하므로 만화 같다는 것이 폄하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만화 같다는 말을 폄하처럼 쓰신 분들의 리뷰는, 개인적으론 공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점들은 결코 만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들은 지극히 영화적일 수 있고, 영화 '초능력자'는 만화에서도 볼 수 있는 장점들을 영화적으로 잘 풀어내어 참으로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만화스럽게 여겨지는 영화적 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을만한 (어쩌면 세계 공통의?) 여러가지 거리들을 풀어놓으며 팍팍한 현실을 통쾌하게 비틀며 즐기게 하는 판타지 변주곡을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그 외에도 이 영화가 만화 같다고 폄하 당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비약? 플롯에서의 빈약함? 그러나 비전문가라 왠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게 보는 저로서는 그러한 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제가 이 영화를 본 목동 CGV 1관 저녁 7시 35분 시작 영화 상영에서는 집으로 돌아가 영화를 폄하할 평을 남기실만큼 재미 없게 본 분은 (적어도 제 주변에는) 없었던 것 같네요. 



 한국적이라 할 수 있을, 소시민 히어로물
 이 영화는 조금 비약해보자면 한국적인 히어로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적인 히어로물의 가장 큰 특징은 히어로물이 히어로물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흔히 아는 마블코믹스와 같은 미국 히어로물과 드래곤볼 또는 에반게리온(요걸 히어로물이라고 하면 안될 거 같기는 한데...) 등과 같은 일본 히어로물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른 점은 바로 한국의 사회상과 한국만의 정서를 잘 담아내기 때문인데요. 영웅이 영웅으로서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며 괴로워하는(아, 왜 나는 히어로인가? 나의 이 빌어먹을 능력은 왜 날 가만히 두질 않는거야? 라든가) 미국 히어로물과 활기차고 호쾌하며 낙천적인 주인공이 갈수록 강해지며 정의를 수호하거나 세기말적인 코드에 물든 세상에서 무심한듯 시크하게 적을 무찌르는 일본 히어로물과는 다르게, 한국의 히어로물은 대부분 소시민에서 출발하며, 삶에 찌들어 남 걱정하기 힘들어 보이는 주인공이 때로는 답답한 정의 덕에 쥐어터져가며 뭔가 작은 정의(세상을 구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가봐요)를 구현해나가거나 사그라드는(이건 다 '지구를 지켜라' 때문이다)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사실 제 임의적인 것이라, 맞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사실 이 리뷰 쓰고 누군가가, '안 그런 미국 히어로물도 있는데요? 일본 히어로물도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대체 히어로물의 뭘 아신다고 이런 감상평을 쓰시나요? 영화 표값 책임지실래요? 이래서 아무 감상평이나 읽어선 안 된다니까!' 라고 하신다면 사실 저는 부끄럽습니다. 부족한 감상평,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적인 히어로물은, 한국의 사회상을 잘 덧입히면서 한국인이 공감할만한 스토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가 히어로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감상평 후반부 스포일러가 포함된 부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초능력자'의 장점



 '초능력자'의 장점 1 -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이 영화는 상당히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됩니다. 제가 새가슴이라 그런지 몰라도, 초능력자인 초인과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세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격전과 이야기 전개는 영화 후반부까지 긴장감을 유지시켜가며 120분을 결코 길지 않게 만듭니다. 다소 딱딱한 분위기만을 감수한다면 이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도 결코 나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참고로 저는 오늘 영화를 보고나서 '바.젖.남'이라는 신조어를 (저 혼자서만) 만들어냈는데요. 이는 바지가 젖은 남자의 준말로, 무언가에 푹 빠져 흐르는 땀에 바지가 젖어버린 남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뭐, 제 유머 센스는 제가 봐도 좀 부끄럽습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2 - 외국인 같지 않은 외국인 '버바'와 '알'
 다시보는 버바와 알 시리즈, 니들이 짱드세요



 저는 영화 정보를 그리 가지고 가지 않은지라, 왠 웃기는 외국인들이 나온다고만 알았지, 이렇게 친근하고 귀여운 두 외국인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인공 뺨치는 순박함에 잘 버무려진 사투리를 구사하는 버바와,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그럴싸하게(?)해서 대단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웃음이 유발되는 알은 영화 내내 소소한 웃음을 줍니다. 영화 후반부 이들의 퇴장에 가슴 아파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이거 원, 두 시간만에 왠 외국인 둘에게 내게 있는 모든 정을 퍼부은 듯한 기분이란...
 이미 감상평 전반부에서 이야기했든 이 영화는 캐릭터를 참 잘 살렸는데요. 사실 어쩌면 고수가 맡은 임규남 역과 강동원이 맡은 초인 역보다 더 이 영화를 잘 살린 캐릭터가 바로 버바와 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외의 조연으로 전당포 사장님과 전당포 사장님 따님이 나오는데, 이 둘은 버바와 알로 인해 제 관심의 변두리로 무참히 밀려나게 됩니다. 
 버바와 알은 흡사 트랜스포머의 수다쟁이 형제 자동차들 같은 느낌을 준다랄까요. 
 정말 보다가 아놔 ㅋㅋㅋㅋㅋ 싶었습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3 - 불꽃튀는 두 주인공의 인물대결 & 캐릭터 대결
 
캐릭터에 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으니 넘어가고, 인물대결 역시 말 안 해도 다들 아실테니 넘어가렵니다. 그래도 장점 중에 장점이니 그냥 넘어가긴 뭐하드라구요. 서비스샷으로 고수 순박미소샷 하나 올라갑니다.
 




 죄송합니다. 이 이후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된, 아니 영화 전체를 포함한 부분이므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가급적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4 - 판타지 속에 내포된 한국 사회의 단면
 뭐, 영화평 잘 보다가도 이 영화는 그 사회를 잘 드러냈다. 라고는 문단이 나오기 시작하면 사실 슬슬 스크롤이 빨라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부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 한국에서의 정의의 모습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시간 동안 정이 듬뿍 든 외국인 캐릭터 '알'은 초인을 잡으려 하는 규남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 있잖아. 이 일은 그 사람들이 할 일이야.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져. 경찰들이 못 잡으면, 검사도 있잖아. 그보다 더 높은 사람도 있잖아. 우리는 나서지 말자"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경찰들은, 그리고 더 높은 이들은 딱 한 시퀀스로 그러한 기대를 여실히 깎아내립니다. 사투 끝에 초인을 잡은 규남은 초인의 얼굴을 비닐봉투로 가린채 경찰서로 초인을 끌고 갑니다. 그러나 비닐을 벗기지 말라는 규남의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상사로 인해 초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탈출을 하고, 그 와중에 경찰은 자신의 총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보여지는 뉴스에서, 초인과 규남은 '갑자기 경찰서로 들어와 경찰의 총기를 강탈한 총기 탈취범'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규남의 말을 순순히 믿을 사람은 찾기 힘들겠지만, (CCTV를 본 두 부하 경찰은 어느정도 초인을 경계했지만) 어찌 되었건 믿지 못한 결과는 '총기 탈취범이 된 규남'이라니. 이는 늘 영화에서 볼 법한 히어로의 억울한 누명 아니겠습니까? 물론 비록 본의 아니었더라도 총을 가지고 간 규남도 잘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더불어 초능력에 의해 가는 곳마다 초인에게 총을 넘기는 경찰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힘 있는 자에게 참 쉽게 자신의 공권력을 넘기는 힘 없는 경찰의 모습인 듯 보여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아, 공권력 같은 단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절대 반정부주의자라던가 그런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현실이 이렇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들은 규남에게 우리가 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고 더 응원을 불어넣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진짜 한국 사회의 단면은 바로 주변인들로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중반부 초인과 규남의 사투 중, 초인은 비열한 기지를 발휘에 지하철 역에서 한 엄마로 하여금 아이를 철로로 던지게 만들어 규남을 철로로 뛰어들게 합니다. 다행히 아이를 규남, 그러나 그런 상황을 알리 없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있는 규남에게 싸대기 한 대를 작렬하고 아이를 데려 갑니다. 뭐, 모르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아기 엄마의 강렬한 스파이크 싸대기 때문인지 급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규남을 보고 지하철역의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아낄 수 밖에 없는 이유인 '의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자세'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남들과 다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였지만, 저는 그보다는 의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비록 초인이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어린 시절부터 고생과 외로움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초인을 이해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낼 순 없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포커스는 초인이 아닌 규남에게 맞추어져서 우리 사회에서 의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돈을 훔치고 규남을 제거하기 위해 또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초인은 이야기합니다.

 "너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이들은 알지도 못 해. 이 사람들이 죽는건 모두 너 때문이라고."
 
 그리고 현실과 현실의 악인들은 이야기합니다.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해.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거야. 니가 움직이면서 니가 다치고 니 주변사람들이 다쳐."

 정작 누군가를 진정 다치게 만드는 원흉은 의인이 아니고 악인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마음이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 차츰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게 소중한 사람 또는 나에게 이러한 일이 닥치지 않는 이상 우리 또한 불의를 보고도 몸을 사리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것을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여기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현실의 비겁함 또한 이런 악인들의 가당찮은 변명을 합리화 시킵니다.

 역무원이었던 김행균 씨가 구한 아이의 어머니는 (적어도 언론 상에는) 아직까지 김행균 씨에게 감사의 인사 한 번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냐는 김행균 씨의 사려깊은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보다 더한 사람들이 주변을 봐도 참 많습니다. 성추행 당한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성추행을 막아준 청년이 경찰서에 입건 되었는데도 증언 한 번 하지 않고 꼭꼭 숨어버린 여인, 심지어는 자신을 살려준 이에게 자신의 보따리를 책임지라는 속담 속의 그 대단한 분들, 나쁜 사람과 그를 막는 이 사이에서 마치 유튜브 공식 업로더인 듯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앵글까지 잡아가며 찍는 사람들.

 누군가가 초인이 한 말을 답습해 이 영화를 평하더군요. 규남의 오지랍이 살인을 불렀다고 말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 밑 단락에는 진짜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심해주세요!

 









 '초능력자'의 장점 5 - 그런 현실에서의 최상의 판타지
 
우리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정의를 지키는 이들에게 갈증을 느껴가는 중에, 그나마 규남의 고군분투는 공감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영화 말미 휠체어를 탄 규남의 등장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합니다. 그가 구한 세상에서 그는 그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일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의인들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영화는 이런 현실에서 최상의 판타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아마 이 결말로 인해 이 영화 전체를 폄하하게 되는 분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영화 말미, 불구가 된 규남은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역에 와 있습니다. 바로 초인으로 인해 죽은 전당포 사장의 산소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 와중에 지하철 선로에 아이가 빠지게 됩니다. 지하철이 막 지하철로 드러서는 일촉즉발의 순간. 모두가 비명을 지를 뿐 무엇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규남이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치 초인이 초능력을 쓸 때처럼 화면이 '반짝반짝 눈이 부셔지더'니, 그 짧은 순간 규남은 아이를 구해 반대편 승강장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습게도 저는 이 장면에서 나름의 현실에 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처구니 없이 사그라드는 의인들. 규남의 마지막 휠체어에서의 모습은 그런 의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초인적인 힘으로 부활합니다. 
 
 이러한 장면을 비약이라 느낄 필요가 없어보이는 것은 사실 이 영화가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규남은 영화 속에서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트럭에 그대로 받치기도 하고, 지하철과 돌벽에 부딪혀 머리에서 말그대로 피를 쏟기도 하고, 칼에도 여러번 찔리고, 목도 조여봅니다. 사실 알고보면 규남 역시 초능력자였던 거 아닐까요? 그리고 그의 '각성'은 결국 그가 초인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끝까지 살아남아서, 네가 죽인만큼 내가 살려낼거야."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규남의 말에 대한 초인의 답처럼(수없는 변두리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온 규남을 보고) "니가 왜 그렇게 사는지 알 것 같다."는 답이 정답일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규남의 착한 마음은 결국 그를 또다른 초능력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영화에서는, 착한 사람에게 초능력이란 선물을 주는 것으로, 현실에서의 안타깝게 스러저가는 의인들을, 착한 마음들을 위로하고자 한게 아닐까요?

 저는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결말마저도 좋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인에 대해서
 영화 말미, "니 이름이 뭐냐?"라는 규남의 물음에 눈빛이 흔들리는 초인. 남들과 달라, 외로운 그. 마지막 규남의 독백처럼 만약 다른 공간에서 초인과 규남이 만났다면 그 둘이 공유할 수 있었을 무언가.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지만, '악인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록 그의 삶이 어떠하였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그의 악행을 쉽게 용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또다른 악인이 등장하지 않게 하는데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들과 다른 인생은 어찌보면 초인이나, 규남이나, 버바와 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초인은 가공할만한 힘을 가져 조금 더 독특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구한 사연으로 악인이 된 이들을 볼때마다, 그보다 더 기구한 사연임에도 참으로 착한 이들에 대한 감사를. 그리고 악행은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구를 말입니다.



 스포일러 끝입니다. 스크롤 내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잘 어우러진 캐릭터들과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박진감, 그리고 한국형 히어로물로서 어설프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는 적어도 9000원 내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영화입니다.

 늘 뭔가 부족했던 고수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하나 더 구축해냈습니다. 자주 이미지가 우선이던 강동원 역시 강동원이 아우라가 아닌 초인이라는 캐릭터의 아우라를 통해 강동원이 아닌 캐릭터를 잘 표현해 영화를 받쳐주었습니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소소한 재미들과, 바.젖.남을 만드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은 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만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 여러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긴긴 감상문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감상문이지만 영화 감상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블로그를 통해 함께 생각을 나눌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 글들을 보시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덧글로 방명록글으로 제게 손 내밀어주세요^^
 부족한 저의 생각이지만, 분명 손내밀어준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어 봅니다.

 부족한 제 글 추천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추천 후 덧글 남겨주시면 확인하는대로 바로 답방해서 저 역시 블로그/홈피에 생기를 불어넣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부족한 제 감상평에 대해 지적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영화가 궁금한 분들께 더 도움이 되는 감상평이었으면 합니다^^

 늘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soulian
2010. 10. 10. 02:11 오롯/문화 누리기

 간만에의 대학로 나들이였습니다.
 한동안 바빠서 오페라, 뮤지컬, 연극은 거녕 영화 한 편 보기도 어려웠는데... 간만에 연극을 보게 되었네요. 연극의 장점은 역시 가까운 곳에서 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일텐데요. 배우들의 섬세한 호흡과 카메라 앵글에서는 잡히지 않는 소소한 표현 하나하나도 자신의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지요.

 아무튼, 간만의 연극이었기에 많이 기대를 하였지만...
 사실 또 마냥 기대만은 할 수가 없었던게... 간만에 보는 연극이 혼자 보는 연극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전 소소한 일상 게시판에도 썼듯, 이 작품에 대한 인터넷 평이 그리 좋지 않고 소재가 소재인지라(기생충) 주변의 꽤나 문화생활 한다는 분들께서도 다소의 난색을 표하더라구요.
 더군다나 약속 중의 일부로 만들기엔 저의 이번주 토요일은 너무 버거워서, 연극 딱 한 편 보고 헤어질 시간 뿐인데, 제 쪽에서도 말을 꺼내기가 힘들더라구요. 
 저야 이런 소재 또한 충분히 즐겁고, 또 모험을 즐기지만! 저의 취향과 모험심까지 부담하게끔 할만한 용기가 저에게 없는지라, 고민 끝에 혼자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극은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지레 겁먹고 혼자 간 게 아쉬울 정도로요^^
 (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한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 덕에 극을 보며 궁금했던 점을 해소할 수 있었네요. 좋은 하루였어요. 후후후.)



 soulian은 어떤걸 보았을까?

                               포스터

 연극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줄거리
 경남 어딘가의 한 대학 연구실. 그곳에서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친숙하지는 않은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날 이 연구실에는 한 낯설고 불편한 여자 A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녀는 연구실에서 일 잘 하기로 소문난 한 연구원 B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그 연구실의 다른 연구원에게 부탁해서 기생충에 대해서 막 배우고 있는 참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은 왠지 그저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가득해있는데요. 그녀의 남편 역시 이런 상황 속의 아내를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A는 그런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누게 되는 그네들의 삶의 단편들. 어느새 그들은 기생충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줄거리를 극 홈페이지에서 퍼오는게 가장 정석적이겠지만, 사실 극 홈페이지의 설명은 제가 볼 때에는 다소 극과 맞지 않아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름 정리해보았는데... 또 이게 주관적일까봐 극 홈페이지의 설명도 곁들어보자면^^

 연극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극 홈페이지 상 줄거리
 남해 바다를 끼고 있는 경남 지역 한 대학의 기생충학 연구실. 최근 서울의 대학에서 적을 옮겨온 연구원 진일의 아내 리은이 기생충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다. 이 이례적인 수업이 지방으로의 전근 때문에 부부 사이에 생긴 감정의 골을 메워보기 위한 리은의 작은 몸부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연구원들은, 여전히 냉담한 진일을 대신해 리은에게 기생충의 세계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려 한다.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진중하게 흘러가는 수업 속에서 숙주에 철저히 기생하기 때문에 숙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 기생충의 생존방식에 대한 연구원들의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견해들이 오고 가고……. 수업의 끝자락, 리은과 진일은 자신들의 관계를 기생충과 숙주와의 관계에 비추어 보며 관계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렇게 줄거리를 함께 보면, 조금 더 극을 이해하기 좋겠죠?

 왜 제가 적은 줄거리는 A, B이냐면, 저는 왠지 극 중 이름을 잘 기억 못합니다. 영화를 볼때도 정말 감명깊게 보았다고 해도 '아, 그... 그 사람 있잖아. 그 역!' 이렇게 저의 감명을 표현할 수 밖에 없죠. 아마 극을 볼 때 얼굴로 사람을 알아보니까 이름은 그냥 있고 저 얼굴은 그 캐릭터로 기억해서인가 봅니다.



 
 등장 인물들 : 좌로부터 남편/연구실 막내/연구실 여성(이혼-이거 적어도 되나?)/아내/연구실 선배



 아무튼, 이 연극은 모 피자 여성들을 위한 이벤트에서 비록 여성은 아니지만 그 피자를 주문한 당당한 고객으로서 응모해서 제 이름과 제 성별(응?)로 초대받은 연극이었습니다. 밝히는 이유는, 어쨌든 돈을 주고 본 작품과 초대 받은 작품은 보는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에, 그런 점을 감안해주십사 하고^^



 soulian은 왜 보았을까?
 1. 우리의 사랑은 기생충과 다른가?
 제가 이 극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사랑을 기생충과 대비시켜 놓았을 것이라는 연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연극에 대한 소개 가운데 '아낌없이 뺏는 것이 오히려, 사랑 아닐까요?'라는 문구가 있는데, 저는 이 문구가 의아했거든요. 우리의 사랑이 기생충과 비교 받아야 하나? 삶이 기생충 같을진 몰라도, 사랑에 기생충이...? 저는 그 행간에 숨겨진 극의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취향 참 독특한가요?^^;

 2. 대체 이 극과 극의 평들은 뭔데?
 연극을 응모하기전 찾아본 평들. 저는 이미 1번의 이유에 마음을 사로잡힌지라 나쁜 평들은 다 건너갈 수 있었지만 사실 평들이 안 좋은 경우가 많더군요. '이해할 수 없다.', '난해하다.', '90분이 세시간 같다.' 이쯤 되면 포기할만도 한데, 그럼에도 이 연극을 흡족해하는 평가들도 있다는겁니다. 이쯤 되면 저는 갈 이유를 하나 더 찾은겁니다.
 역시, 취향이...!

 3. 어쨌든 공짜. 양잿물보다 더 하겠어?
 공짜란 표현은 실은 실례이지요. 그 분들의(연출자/연기자/관계자) 노력과 헌신은 분명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이니까요. 다만, 보는 입장에서는 관심 있지만 걱정되는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메리트입니다. 1번과 2번 이유에서 망설이던 저는, 3번에서 당연히 오케이를 날릴 수 밖에 없었죠!



 soulian은 어떻게 보았을까?
 1. 긴장이 넘친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연극을 어려워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극에 넘치는 긴장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극의 플롯 상의 긴장이 아닌, 여주인공이 발산해내는 긴장입니다. 이 긴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낯선 상황에 처한 움추러든 한 개인의 긴장감'인데 이 긴장감이 극의 거의 전반에 걸쳐서 팽배합니다.
 가뜩이나 적응 못하는 자신의 새로운 터전. 그 터전에서의 삶 속에 남편이 일하는 직장에 찾아가 남편 후배 동료에게 부탁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더군다나 숯기 없어보이는 그런 사람이 그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이런저런 알력다툼, 인간적인 투닥거림을 나누던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하나하나가 얼마나 자신을 움추러들게 했을까요. 아마 비슷한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사실 이런 긴장은 유쾌하지 않죠. 저도 극을 보면서 가끔 좀 머리가 아플때가 있었습니다. 그 긴장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극 자체가 숨이 막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긴장이 극의 일부라는 점에서 사실 그 긴장이 이렇게 잘 느껴진 것은 극 자체로 보자면 극의 성공인거죠.
 개인적으로 궁금하더군요. 궁금한건, 아래에서!

 
       긴장감이 가득한 극의 풍경(출처 : 연합뉴스) 

 2. 단조로움이 극에 주는 극과 극의 느낌
 우선 이 연극이 극과 극의 평을 받은 이유는 극을 보니 너무 쉽게 보여졌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극이 너무나도 단조롭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조로움은 마치 실제 한 연구실을 떼어다가 놓고 '자, 여길 보시오' 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혹자는 집중을 하며 소소한 하나하나에 집중을 할 것이고, 혹자는 지루함을 느낄 것입니다. 아마 이는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 순간과 미묘한 감정 등을 잘 읽기 바라는 마음에 의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극에서 주로 바라보게 되는 여주인공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에 지쳐 심약해진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심약함을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극은 결코 판타지스럽거나 과장되게는 풀지 않지요. 그러다보니 단조로움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인것 같습니다. 사실 이로 인해 극의 중반부까지 극의 각 인물들은 개성 자체가 없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사실 그들이 가진 각각의 개성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은 '조금씩은' 과장한 모습임에도 말입니다. 
 제게 이러한 단조로움은 어땠냐구요? 1번에서 적었듯, 극이 주는 불편감에 흠뻑 빠질 정도로 유용하게 단조로움을 이용했습니다. 단조로우니 극 속 상황의 불편감이 몇 배로 제게 오더군요. 그래서 극이 더 즐거웠습니다.
 다만 이러한 단조로움이 일부는 일본의 원작을 한국 상황으로 옮겨오면서 생기는 괴리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출가 분은 이 극을 준비하시면서 일본의 원작을 한국 상황으로 옮겨오고자 노력하셨다고 하셨는데, 사실 캐릭터들은 일본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극 속의 성격을 많이 닮은 듯 하더군요.

 3. 재미나다! 단, 뭔가 공부하는 각오를 할 부분이 필요한가보다.
 긴장감과 단조로움이 피할 수 없는 극을 즐기기 위한 불편함이었다면, 나머지 극은 참 재미났습니다. 저는 'ㅋㅋㅋㅋ 몰입 ㅋㅋㅋ 몰입ㅎㅎㅎ 몰입 ㅋㅋㅋ 잠시 딴생각 ㅋㅋㅋ 몰입 ㅋㅋㅋㅋㅋㅋㅋ 몰입 ㅋㅋㅋㅋ 몰입 ㅋㅋㅋㅋ 헉!!!!!! 곰곰곰 ㅋㅋㅋㅋ 후후후후 오호 우훔' 하며 극을 봤습니다.
 다만 '자유롭지 않게 공부하기'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극이 귀에 안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생소한 기생충을 소재로 하다보니 기생충에 대한 소개도 나오고 더군다나 그 기생충들의 이름은 정말 '생소'하니까요. 그나마 생명과학 쪽을 복수전공하며 쌓아둔 지식이 이 연극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나봅니다. 근데 사실, 뭐 그렇게 각오가 필요해보이진 않습니다. 그냥 기생충에 대한 설명에 귀기울일 마음만 있으시다면 이 극은 충분히 ㅋㅋㅋ할 수 있는 내용이니까요. 무엇보다 연구실 막내의 고군분투는 즐겁고, 연구실 사람들의 작고 재미난 다툼도 즐거웠습니다.
 다만, 철지난 황정음의 "됐고"는 즐겁지 않았어요! 라고 말하면... 열심히 극 준비하신 분들 상처받으실지도... 죄송합니다. 물론 이 글은 안 보시겠지만...^^;

 4. 그러니까 기생충이랑 사랑이랑, 뭐?!
 사실 기생충과 사랑의 관계는 극의 마지막 대사 하나에서 넌지시 들어났을 뿐... 사실 제가 기대한 기생충을 통한 사랑의 고찰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공생을 바라지 말고, 기생을 먼저 생각하는건 어때?"
 사실 이 극은 이 순간 약간 전 부분을 계기로 반전되는데요. 그전까지 답답하고 불편한 극이 어느순간 평온해지고 따스해집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 대사가 매우 마음에 들었구요. 이 대사는, 연구원 선배가 남편인 연구원에게 아내가 환경을 갑자기 바꿔 어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넌지시 건넨 대사인데요. 무조건적인 공생, 너는 이만큼 나는 이만큼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다소 양보하여 그가 살 환경을 먼저 주어주고 그를 키우고 그 다음에 서로가 더 보다듬어 가는 것을 바랄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남이라는 시골(응?)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내를 '일단 서울로 혼자 보내'려는 남편의 결심에 대한 충고였죠.
 사실 저는 이 대사 하나로 이 극의 기나긴 긴장감과 불편감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사랑'에서의 '기생'에 대한 무언가 제가 바란 '장황한' 답은 없더군요. 어쩌면, 그 장황함은 애초에 이 극에서 배제되었던 것 같습니다.

 5. 과학과 연극의 융합?
 저는 사실 이런 주제를 그다지 염두해두지 않고 극을 보러 갔습니다. 말그대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기생충'으로 풀어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극은 '과학'과 '인문학-연극-'을 융합하는 작업이 그 의미 중에 하나더군요.
 어쩌다보니 저는 지금 인문학과 과학을 함께 전공하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길게 하고픈 말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우선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연출가분들이 그 '융합'을 고민한 흔적은 좋으나, 그렇다고 그 융합이라는 부분에 압도당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과학도 연극도 주어지면 기꺼이 받아드릴 수 있는 부분일테니까요. 라고 뭉뚱그려 써놓고 언젠가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soulian은 어떻게 느꼈을까?
 무엇보다 이 극은 위에 언급한 한 마디로 축약해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공생을 바라지 말고, 기생을 먼저 생각하는건 어때?"
 사실 저는 이 극을 보기 전에 사랑을 기생에 표현한다는 것이 '대단히' 불쾌했습니다. 저는 사랑과 기생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극을 보면서 '입장'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극에서는 기생을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나눕니다. 기생을 하는 '아낌 없이 빼앗는' 기생충, 기생 당하는 최종 숙주인 '숙주', 그리고 기생충이 숙주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하난 '중간 숙주'
 예를 들어 한 조류에 기생하는 기생충은, 조류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민달팽이의 몸에 들어가서 민달팽이를 조종해 조류에게 먹히게 하고 자신은 조류의 몸속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이 경우 누가봐도 기생충은 나쁜 놈이지요. 왠지 조류보다 민달팽이가 더 불쌍하게 여겨지고요.
 이러한 설명을 하며 연구원들은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라고.
 솔직히 저는 어쨌든 기생충은 나쁜 놈입니다. 적어도 제가 숙주이거나 제가 아는 생명체가 숙주인경우. 심지어 저 또한 그러한 기생충에 범주에 든다고 해도 말입니다. 기생이 아닌 공생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이런 도덕적인 판단까지!).
 하지만 사실 인간들의 세상은 그리 딱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입장에서 보는 기생충은 우리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몹쓸 놈들이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인간들은 그저 기생과 비기생(엉?)으로 나누기엔 서로 주고받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극은 '감당할 수 있는 기생, 이해할 수 있는 기생, 그리고 기생에서 나아간 공생'에 대한 의의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는 말입니다.
 


 쓰다보니 분명히 연극 소개문은 아니게 되었군요. 정말 연극 감상문이 되었습니다. 아, 연극 봤다고 넌지시 이야기하고 나름 평이하지만 임팩트 있는 연극 감상 및 소개문을 쓰고 싶었는데. 이게 저의 한계인가봅니다.
 그리고 글은 마쳐가네요.

 

 그러므로?
 
저는 이 연극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불편감 속에서도 유쾌하게 풀어갔습니다. 비록 자극적인 즐거움은 없었지만 잘 들여다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많은 연극이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더 쉽게 접근하게 조금 더 친근할 순 없었나? 라는 아쉬움이 드는 점도 있었지만 쉽지 않은 접근에도 의의를 두고 계신 연출자분들이시라면 그런 아쉬움은 그냥 아쉬움이겠지요. 쉽지 않은 접근일지라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런 즐거움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연극도 필요하고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요.
 접근하기 힘들어서 보기 어려운 것과, 정말 너무 엉성한 나머지 재미 없어서 보기 어려운 것은 다른데. 적어도 이 극은 엉성하진 않습니다.
 저는 이번 극을 보고 나서 '과학을 녹여낸 연극'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적어도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는 인문학적 입장에서 그런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 비록 과학 자문분들이 존재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분들은 자문했지 이 극에 과학적인 무언가를 불어넣은 것은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극은 연출가의 몫이니까요. 연출가분들이 과학적인 접근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이전 작품 그리고 이번 작품을 디딤돌 삼아 더 나은 접근으로 또 다른 극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주시길, 그런 기회가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여봅니다.

 오는 9월 10일 대학로 공연을 끝으로 부산에서 상연된다고 하네요. 혹시 소소한 즐거움을 좋아하시는, 약간의 공부하는 느낌도 괜찮으신 분이라면, 저는 이 극을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극 중에 고래가면(뭘까?)이 등장하는데요.
 저 사실 그때 갑자기 극이 호러물이 되는 줄 알고 정말 심장이 쿵쾅쿵쾅.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가님이 말씀해주신 의미도 의미였지만(스포일러 방지)...
 저는 그 고래가면, 인물들을 도와주려고 등장한 용왕님인줄 알았어요. 실제로 그 고래가면 등장 후에 극이 술술 풀려나갔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고래가면님, 감사합니다.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
 근데 연출가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관객분들이 느끼신 것이 답일거라고. 그게, 답이겠죠^^
 용왕님, 제 블로그에도 와주셔서 제 블로그 좀 살려주실래요? 네?

      긴장 끝에 찾아온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출처 : 엲합뉴스)
 

 졸립니다.
 이제 자야겠어요.
 잘 모르겠고, 일단 글이 깁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랄까요. 이 글은 이 연극을 보려는 분보다 보신 분이 편하게 보실 수 있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네요.
 그럼에도 무사히 쓴 것에 감사하며... 더 나은 글을 써서 더 많은 분들과 공감할 날을 바라여 보겠습니다.
posted by sou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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