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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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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2. 23:17 오롯/방송 즐기기

 얼마 전 회사일에 힘들어하는 형이, 드라마 보면서 기분전환하고 싶다길래 추천해주었던 드라마입니다.
 저도 보진 않은 상태에서 그냥 평가 훑어보고 추천해주었는데, 정작 그 형은 '즐거운 나의 집'을 보고 있고, '역전의 여왕'은 일단 제가 봐야 추천도 잘해줄 것 같아서 보기 시작해서 내가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둘 다 MBC군요. 사랑해요. 마봉춘!

 사실 그렇더군요. 처음 4회 보고나니, 예상외로 나오지 않는 시청률의 이유가 보이더군요. 아는 형이 '즐거운 나의 집'을 보기 시작한 게 잘했다 싶기도 하고...
 무려 김남주+정준호 조합에, 지금껏 조연으로 제 몫 못해낸 적이 없는 채정안이랑 박시후까지. 배우진은 물론이요. 감독과 작가진 역시 지금껏 늘 예상 이상의 홈런을 쳐낸 이들이니... 10%도 안 되는 시청률은 단순히 자이언트와 성균관 스캔들의 선전만으로는 설명하기 아쉽습니다. 

 때때로 현실 사회를 잘 다루었다고 호평 받는 작품들이 상당한 대중의 외면을 받으며 그대로 퇴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바라는 점을 잘 나타내는 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힘든 가운데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고 동병상련을 느끼고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그 힘듦이라는게 정말 팍팍한 일이라면, 현실적이고 냉정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지켜보는 것은 정말 고욕입니다. 
 오늘까지도 퇴직 권고를 받는 사람이 드라마에서도 퇴직권고에 무기력한 주인공의 일상을 보게되면 과연 그 사람은 주인공에 공감하며 빠져들까요? 드라마에서라도 퇴직 권고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할까요?
 지난 4회의 '역전의 여왕'은 흔히 말하는 현실, 바로 역전 이전의 모습을 너무나도 팍팍하게 다루었습니다.
 사실 그런 가운데, 맥아리 없는 주인공들만 보기엔 TV 시청률의 주된 타겟인 중년층과 그외의 나이대에서도 드라마를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겠지요. 더군다나 그런 팍팍함을 이런 아픔은 겪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애써 볼 필요가 없구요.
 그러나 팍팍한 현실 같은 상황이 드라마에서 역전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과연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역전이 될까요?
 역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11월 1일 방송에서 시청률은 10.5(AG넬슨), 8.5(TNmS)으로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줄거리

 잘나가던 커리어우먼이었던 황태희(김남주)는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인 신입사원 봉준수(정준호)에게 첫눈에 반해 갖은 노력 끝에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은 황태희를 여지껏 돌보아주던 상사인 한 상무(하유미)에게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고, 분노에 찬 한 상무와 봉준수의 전 여자친구이자 황태희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던 백여진(채정안)의 협공에 황태희는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커리어우먼의 단맛을 제대로 본 황태희, 어찌 거기서 물러서랴. 이곳저곳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 그러나 한 상무의 무시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인해 재취업을 포기하고 가정주부로 안착!
 그러나 이렇게 나름대로 대충 수습되어 평화롭게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는 봉준수의 권고퇴직(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은 아무리 봐도 잔인하지 않나요? 희망하지도 않았고, 희망도 없는 퇴직인데 말이야.)을 권유받으면서 계기로 새로운 고비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 구용식(박시후). 구용식은 황태희와 봉준수가 몸담고 있던 퀸즈 그룹 회장의 서자로, 과거 봉준수의 군대 후임이기도 합니다. 봉준수에게 참 예쁨(?)받다 못해 모진 수모를 당한 과거에 구용식에게 봉준수는 당연히 아웃 오브 회사임에 틀림 없는데, 그 와중에 구용식과 황태희가 꼬여 버린다. 봉준수의 흑장미로 등장한 황태희에게 잔소리 한 번 거하게 들은 구용식은 정신은 좀 챙기는 동시에 어이는 좀 잃어버린 상태로 황태희를 (만나면 왠지 캥겨서 숨는 방식일지라도) 관심의 대상으로 두게 됩니다.
 아무튼 결국 봉준수는 권고퇴직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황태희는 회사로 돌아가게 됩니다. 황태희는 권고퇴직으로 인한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와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블라인드 공모전에 당당하게 입상하여 퀸즈로 다시금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죠. 눈을 부릅뜨고 립스틱 짙게 바른 한 상무가 회사 로비에서부터 구두경고를 날리고 있으니...

 줄거리는 이쯤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드디어, 일개 회사원의 고군분투가 제대로 펼쳐질 것이 눈 앞에 보이지 않습니까?

 드디어 팍팍한 현실을 비추는 것을 넘어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만한 커리어우먼의 재도약을 통해 시청자들의 반향을 일으킬만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 같습니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던데. 쓴 인내를 4회나 풀어놓아 그만큼 기존 시청자와 '귀로 들어온' 예비 시청자들의 마음을 감정이입시켜놓고 제대로 한 판 벌려보겠다는 의도가 물씬물씬 풍겨져 옵니다.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몇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절대악과 기구한 사연의 충돌


 극 중의 한 상무는 틀림없는 악역입니다. 권고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임원진 앞에서 '기혼녀들을 먼저 자르는 방향'을 여자의 몸으로 설명하며, '내 힘이면 안 될 것 없어'의 무소불위 권력형에, 회장 사모님의 더러운 일들에 대한 시중까지 고고하게 해내는, 틀림없는 악역이다. 그녀의 붉은 립스틱을 볼때마다 전 움찔움찔 하게 됩니다!
 그 반면, 사랑하나 제대로 믿은 순수한 여자 황태희와, 서자 출신의 섹시남-늘 그렇듯 허술한듯 든든한 구용식이 아마도 파트너쉽을 이루어 한 상무와 격돌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상무의 권력은 구용식의 빈약하지만 확고한 권력으로 맞붙어질 것 같고, 한 상무의 악행은 황태희의 캔디형 노력으로 맞불이 놓아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전형적이지만, 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가요?



 2. 눈물샘을 예고하는 밑밥작업


 봉준수의 상사인, 평생을 직장에 몸바쳐온 기러기 아빠이지만 권고퇴직을 권유받은(줄여서, 불쌍한) 김창환 분의 간암 소식은 물론이요. 이런저런 기구한 사연들이 이미 5회만에 정리가 되고 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눈물샘들은 '알고보니 내 아들' '알고보니 내 동생' '알고보니 막장'에서의 눈물샘들과는 다른, 분명히 순수한 타입의 눈물샘들입니다.
 지난 4회 동안의 아픔들이 보기 거부감 느껴질만큼 찌르는 아픔들이었다면, 이제 앞으로의 아픔들은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하며 울 수 있는 아픔들이 될 것 같습니다.
 그 4회와 앞으로의 가장 큰 차이는,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 있는, 그런 아픔에 맞설수 있는 황태희의 행보가 발동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더는 세상 탓을 하는게 아니라, 이제는 내 힘으로 일어선다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3. 캐릭터의 강점


 김남주는 늘 평타 이상을 칩니다. 도도한 커리어우먼은 물론이요. 결혼 이후에는 유부녀로서 누구보다 색다른 매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편안한 듯 결코 쉽지는 않은 눈매는 그녀의 결혼 이후로 생긴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정준호는 흔히 말하는 흥행을 위한 작품에서 가장 어울리는 이점들을 지녔습니다. 사실 예술성이라는 이름하에 정준호는 가장 저평가되는 배우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활은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다소 소시민적인 역할이다. 멋진 마스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할수도 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둘은, 파트너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한데. 현 상황까지 보아서 역시나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하모니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박시후는 이미 서변앓이로 알 수 있듯, 여성의 모성본능 자극은 물론이요. 캐릭터에 있어서 최근 트랜드에 알맞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오늘 5회에서 박시후는 서변앓이를 능가할 수 있는(이번엔 타겟이 중년층 여성까지 늘어난다) 매력을 발산해버렸습니다. 발동이 좀 늦다 싶더니, 단 한 편으로 사람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요. 이런걸 바로 포텐이 터졌다고 하던가요?
 채정안은 지난 몇 편의 드라마에서, 서브 주인공으로서 드라마를 매우 잘 받치고 있음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김남주+정준호 조합의 캐릭터 중년화를 박시후와 함께 채정안이 적절히 끌어내려서 트랜디함을 살렸습니다. 채정안은 늘 드라마에서 드라마의 캐릭터들을 잘 중화시켜주는 듯 합니다.
 이런 네 배우가 모였는데, 그들의 배역들마저도 진부할지언정 질리지는 않을 캐릭터들로 중무장시켰으니, 적어도 캐릭터 문제로 드라마가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4. 늘 사람들을 모으는 '사람 사는 이야기'


 물론 사극도, 영웅극도 좋지만. 결국 최근의 시청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사람 사는 이야기로 공감을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의 팍팍한 삶이 그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극도의 막장으로 바꾸어 정말 말초적인 자극들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꼬고 또 꼬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역전의 여왕은 드라마에 막장을 섞는 대신 판타지를 섞었습니다. 그것도 늘 먹지만 맛난 비빔밥처럼, 너무도 맛나게.



 5. 현실에 대한 판타지가 여는 통쾌함

 요근래 많은 중년 시청자들은 더이상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는 드라마를 흥미롭지 않아할 뿐더러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 퍽퍽해졌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덕분에 현실도피와 말초적 자극을 주는 소위 '막장'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현실을 다룬 드라마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판타지를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제작진의 전 작인 내조의 여왕 역시 그런 점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지요. 현실의 아픔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이야기들은 시청자로 하여금 큰 기대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 대중은 더는 섹검과 떡검들을 비꼬고 풍자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굴욕을 보면서 사람들은 더 통쾌해할 수 있고, 권력가들의 더러운 권모술수를 밝히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응징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지난 몇 년간 두드러지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조금 더 강력한 주제는 아닐지라도, 일상과 마주 닿은 회사에서의 판타지는 오히려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사는, 여지껏도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할 소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껏 잘 버무려져온 역전에 여왕에서 부족했던 바로 그 역전의 판타지가 열리면서 슬슬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 잡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끝마치며

 요근래 들어 시청률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점은, 이제 더이상 첫회 시청률이 드라마의 인기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의 시청률이 초반부에 정체기를 겪다가 타 드라마가 끝나면서 생기는 이탈시청자들을 흡수해서 자신의 시청률로 만듭니다. 더이상 시청자들은 중간에 드라마에 합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역전의 여왕의 현재 시청률 문제는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팍팍한 삶의 나열이 끝이나고, 드디어 극이 '역전'하는 순간에, 마침 자이언트와 성균관 스캔들은 거의 마지막회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때입니다. 이제 역전의 여왕은 말그대로 역전을 위해 한 발만 먼저 앞서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지표는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역전은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MBC 드라마의 총체적인 난국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적어도 역전의 여왕이 MBC 입장에서도 잠시라도 쉬는 숨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MBC 드라마국 여러분 전열 가다듬고 조금만 더 힘내주셨으면 합니다. MBC를 버릴 수 없는 한 사람이 뒤에서 늘 응원 중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가 나만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soulian은 당신의 소중한 진심이 담긴 댓글을 늘 기다립니다^^
posted by sou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