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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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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 23:51 오롯/사는 이야기

 아는 형과의 접선을 위해 들른 대흥역.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형을 기다리는 겸해서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역 출구를 나서자마자 보이는 철거 지역.
 저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역을 나와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철거되고 있는 건물.
 양 옆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이미 어느정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새 주소지도 가졌는데.
 아마도 오랜 보금자리였던 이 집은, 새 주소지를 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켜온 땅에서 떠나게 되네요.


철거되는 건물의 안에는, 살던 이들의 흔적으로 보이는 벽지가 여전히 아름답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방도, 언젠가 이 건물 안처럼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비어지겠지요?


 사진을 찍는동안 한 아저씨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이 곳이 철거지역이라며 설명을 잠시 해주시더라구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니, 아저씨는 사진에 보이는 녹색 기둥의 건물로 다시 들어가시더라구요. 녹색 기둥의 건물은 식당입니다. 이 식당을 기점으로 철거 지역이 시작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식당의 이름은 태광식당.
 아까 설명해주시던 아저씨가 나오시는 길입니다.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나오셔서 딱 문이 보이게 사진이 찍혔네요. 설명도 해주시고, 사진 찍는데도 우연을 통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주차장 뒤로 철거지역이 시작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아서 조금 더 걸어서 철거 지역 안쪽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작업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위에서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혹시나 해서 위를 보며 조심조심 더 안으로 들어갑니다.

 별일 없을거란걸 알지만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면 혼나겠죠? 


 골목 사이로 보이는 공터는 이전엔 몇 가정이 자리잡고 있던 보금자리였을테죠.


 철거 예정이라고 쓰인 빨간 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철거 전에도 잡동사니가 쌓여있었을 건물 모퉁이. 

 사진을 찍던 중에 쪼르르 자리를 옮기는 무언가가 보이더군요.


 철창 사이로...


 고양이가 보이네요.


 한 마리는 쪼르르 도망을 가고, 한 마리는 자리를 떠나지 않네요.
 피곤한걸까요? 사진 찍는동안 눈이 내내 게슴츠레.
 그래도 제 카메라를 피하지 않아 고마웠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근처 마트에 가서 400원짜리(500원짜리 20% 할인) 소세지 세 개를 사들고 왔습니다.

 근데 아뿔사.
 두마리뿐인 줄 알았던 고양이가 소세지를 쪼개 던지니 갑자기 대여섯마리로 늘어나더라구요.
 
 처음 반을 쪼개 던졌던 소세지를 더 잘게 쪼개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소세지를 다 나누어주고 나서도 한동안 제 주변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고양이들.
 미안, 형이 생각이 짧았다.

 좀 더 소세지를 많이 사왔어야 했는데.
 
 그와중에 약속한 형에게 온 전화. 대흥역 도착이시랍니다.


 소세지 더 줘잉!
 이라고 말하는 거 같은 눈빛.

 아까 철장 안쪽에서 꾸벅꾸벅 졸던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입니다.


 에헤, 소세지! 소세지!
 라고 하는 거 같군요.


 왠지 몽실몽실한 느낌의 고양이입니다.


카메라를 뚫어져라 보고 있네요.


 이 고양이, 생명과학과 전공 책에서 본 거 같아요.
 삼색 고양이!


 날 보고 있는거니? 그냥 졸려서 눈을 감고 있는거니?
 분간이 잘 안 가더군요.


 고양이들은 당분간도 이 곳에서 살아가겠죠?

 그리고, 아직 이 지역을 떠나시지 않은 분들도 계시더군요.
 소세지를 사서 서둘러 뛰어가 서서 소세지 비닐을 벗기는 사이에,
 개 한마리의 우렁찬 울음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한 할머님께서 제 앞에 계시더군요.

 소세지를 든 저를 보고 뭐라 표현하기 부끄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할머니.
 왠지 저를 오지랍 넓은 청년으로 보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시리 죄송하기도 하고...

 그냥...
 보금자리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sou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