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는 말씀
이 감상평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상문 중반 이전까지는 그러한 스포일러가 여러분들께 노출이 되지 않도록 신중함을 기울여 글을 작성하였고, 스포일러가 될 부분부터는 그 전에 미리 공지를 하여 읽으시는 분들께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영화를 보고자 망설이는 분들께서는 편히 감상평을 읽으시다가 제가 -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보시면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둔 곳 이후로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리뷰를 더 읽으시거나 또는 영화를 다 보고 나셔서 다시금 읽으시면(아, 아마 잊으시겠지만^^;)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야기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생동감이니까요^^
시작하며
오늘 영화 '초능력자'를 보고 왔습니다.
이전에 본 영화가 무엇인지 가물가물할만큼 요근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질 못 했는데,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간만에 극장 나들이'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이, 바빠졌다는 것이니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영화 볼 여유도 없이 팍팍히 사니 서글프다 해야 하나 생각도 들지만, 뭐, 어찌 되었건 전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우리 시대의 의인들을 아십니까?
일본 지하철에서 철로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고 일본 전역을 숙연하게 만든 이수현 씨. 역장으로 근무하던 중에 철로에 들어간 아이를 구하며 한 쪽 다리를 잃은 김행균 씨. 그 외에도 우리 주변을 알게 모르게 지켜주고 있는 수많은 의인들.
그들은 때때로 만인의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가끔은 '바보'라는 취급을 받을만큼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기도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결말은 그러한 선행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망가뜨리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이 망가지면 '영웅' 대접을 받기 쉽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바보'가 아니될 사람은 없겠지요.
특히나 이런 '바보'는,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보다 올바르다고 믿는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쉽게 붙여지는데요.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바보'라고 불리는 세상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합리화하려고 해도 비겁한 세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 역시도 그런 비겁함에 어찌 보면 몸을 기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영화 초능력자 포스터 : 남자들은 또 한 번 오징어가 된다.
영화 '초능력자 줄거리'
'인생엔 세 가지 고비가 존재한데.'
한순간에 그 세 가지 고비를 넘겨버린 순박한 남자 '임규남'(고수).
너무도 순박해서 동료가 자신의 돈 천 만원을 들고 슝 도망을 쳤음에도 자기가 그냥 준거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 남자는 동료가 사준 생일 선물인 후진 점퍼를 입고 기뻐하던 그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여서 병실 신세를 지며, 그와 동시에 일하던 폐차장에서 짤려 버립니다. 이쯤 되면 이제 더는 고비가 없을 것 같았는데, 진짜 고비가 그의 앞을 찾아옵니다.
'인생이 뭐 그런거지. 대리, 과장 승진도 해가고 그렇게 월급도 오르고 말이야.'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부상에서 회복한 규남. 그는 78년생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각종 정보지를 뒤적거리다 '유토피아'라는 전당포를 찾게 됩니다. 전당포 사장은 그에게 약식 인터뷰를 하더니, 슬쩍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빨간 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에게 대리를 맡깁니다. 이게 왠 떡. 평생동안 어선, 폐차장 등의 일만 전전해오던 그에게 비록 단 둘 뿐인 전당포이지만 대리에, 승진까지 있다니.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 전당포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귀신은 안 만져지는데... 그럼, 도깨비...?'
사실 혼자여도 될 전당포에 왠 대리 직급 직원? 알고보니 사장님은 무언가 기이한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장부에서 비어버린 상당히 큰 돈. 사장은 그 사라진 돈의 비밀을 찾기 위해 큰 맘을 먹고 전당포에 최첨단 감시장비(?)인 CCTV까지 설치하고 최첨단 무기(?)인 전기충격기까지 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
' 우리 사장님 살려내!'
'이 사람들, 모두 너 때문에 죽는거야. 다 너때문이라고.'
사라진 돈은, 자신이 보이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 초인(강동원, 극 중 본명 알 수 없음)의 짓이었습니다. 전당포에 들어와 자신의 초능력으로 사장을 조종해 유유히 돈을 뺏어 간 것이었지요.
규남의 옛 회사 동료들까지 찾아와 시끌벅적한 어느 날, 초인이 다시금 전당포를 찾습니다. 모두가 초인의 초능력에 의해 제어당하고 순조롭게 일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규남이 깨어납니다. 규남에게는 초인의 능력이 통하질 않는군요. 평생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한 초인은 다른 이들을 조종하여 규남을 제거하려고 하고 그 와중에 사장이 초인의 초능력에 의해 조종을 당하던 중에 죽게 됩니다.
유일한 증거는 사장님이 설치한 CCTV의 녹화 화면. 그 화면을 통해 초인을 경찰에 신고하고 초인을 잡으려던 규남은, 그러나 초인의 능력에 의해 계속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초능력자인 초인과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언제봐도 영화 속 떼샷은 영화로 볼땐 덜 어색한데 정지화면으로 보면 어색하다.
영화의 키포인트
강동원의 신비스러움과 고수의 순박한 눈이 만들어낸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
범접할 수 없는 강동원의 아우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왠 여자분 한 분이 함께 본 친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 나 이제 강동원 싫어할 거 같아."
악역인 강동원이 자신의 강점인 아우라를 통해 내비치는 멋진 캐릭터 표현을 떠올리니, 이 여자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하고자 한 첫 동기는 영화 포스터에 나온 고수의 날카롭지만 순박함이 깃든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고수는 멋진 마스크와 빠지지 않는 연기력에도 잘 뜨지 않는 배우 중 한 명인데요(이런 류로 주진모 씨 등이 함께 많은 이들-아마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지요). 영화는 그런 고수의 마스크에 딱 알맞은 캐릭터를 완성시켜놓았습니다.
영화 속 규남은 선한 마음에 초인을 쫓으며 보이는 돌진력까지 영화 내내 야누스적인 매력으로 영화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고수의 눈빛은 순간순간 사슴과 치타를 오가며 그런 규남의 캐릭터의 완급을 잘 조절해나갑니다.
강동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취미가 두문불출이라 알려져 있고, 얼마전 인터뷰에서도 "사생활은 보장받고자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비주의를 가진 강동원은, 자신의 신비주의적인 캐릭터성을 초인에게 잘 맞추어 악역임에도 분노보다는 보는 이의 입을 벌리게 만드는 카리스마로 영화에서 큰 존재감을 보입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이런 잘 만들어진 캐릭터로 영화를 얼기설기 엮어가며 상당히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영화가 그려내는 현실에 대한 판타지 변주곡
혹자는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그러한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느낄 법한 캐릭터의 극대화와 초능력이란 소재, 그리고 제한된 수준의 흐름으로 그리 느끼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지만(결말도 한 몫했겠지요?), 저는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영화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수가 맡은 임규남 역과 강동원이 맡은 초인 역은 각각 자신의 캐릭터를 정말 멋지게 드러내어 어린 시절 만화에서 만나던 정의파 주인공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악인을 영화 속에서 즐기게 합니다.
더불어 현실에서는 있을리 없는 비현실적인 초능력-보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건물에서 뛰어내리게 만들 수 있는-과 그런 초능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만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회복력과 힘과 명석한 판단력(대체 왜 이런 판단력으로 인생을 그리산건지 모르겠어요)을 지닌 또 하나의 비현실적인 범인(평범한 사람)의 용호상박 대결은 만화 이상의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더불어 이 영화의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결말은 아마도 이 영화를 만화와 같다고 '폄하'할만한 여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개인적으론 만화를 좋아하므로 만화 같다는 것이 폄하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만화 같다는 말을 폄하처럼 쓰신 분들의 리뷰는, 개인적으론 공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점들은 결코 만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들은 지극히 영화적일 수 있고, 영화 '초능력자'는 만화에서도 볼 수 있는 장점들을 영화적으로 잘 풀어내어 참으로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만화스럽게 여겨지는 영화적 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살면서 느꼈을만한 (어쩌면 세계 공통의?) 여러가지 거리들을 풀어놓으며 팍팍한 현실을 통쾌하게 비틀며 즐기게 하는 판타지 변주곡을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그 외에도 이 영화가 만화 같다고 폄하 당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의 비약? 플롯에서의 빈약함? 그러나 비전문가라 왠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게 보는 저로서는 그러한 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제가 이 영화를 본 목동 CGV 1관 저녁 7시 35분 시작 영화 상영에서는 집으로 돌아가 영화를 폄하할 평을 남기실만큼 재미 없게 본 분은 (적어도 제 주변에는) 없었던 것 같네요.
한국적이라 할 수 있을, 소시민 히어로물
이 영화는 조금 비약해보자면 한국적인 히어로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적인 히어로물의 가장 큰 특징은 히어로물이 히어로물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흔히 아는 마블코믹스와 같은 미국 히어로물과 드래곤볼 또는 에반게리온(요걸 히어로물이라고 하면 안될 거 같기는 한데...) 등과 같은 일본 히어로물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른 점은 바로 한국의 사회상과 한국만의 정서를 잘 담아내기 때문인데요. 영웅이 영웅으로서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며 괴로워하는(아, 왜 나는 히어로인가? 나의 이 빌어먹을 능력은 왜 날 가만히 두질 않는거야? 라든가) 미국 히어로물과 활기차고 호쾌하며 낙천적인 주인공이 갈수록 강해지며 정의를 수호하거나 세기말적인 코드에 물든 세상에서 무심한듯 시크하게 적을 무찌르는 일본 히어로물과는 다르게, 한국의 히어로물은 대부분 소시민에서 출발하며, 삶에 찌들어 남 걱정하기 힘들어 보이는 주인공이 때로는 답답한 정의 덕에 쥐어터져가며 뭔가 작은 정의(세상을 구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가봐요)를 구현해나가거나 사그라드는(이건 다 '지구를 지켜라' 때문이다)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사실 제 임의적인 것이라, 맞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사실 이 리뷰 쓰고 누군가가, '안 그런 미국 히어로물도 있는데요? 일본 히어로물도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대체 히어로물의 뭘 아신다고 이런 감상평을 쓰시나요? 영화 표값 책임지실래요? 이래서 아무 감상평이나 읽어선 안 된다니까!' 라고 하신다면 사실 저는 부끄럽습니다. 부족한 감상평,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적인 히어로물은, 한국의 사회상을 잘 덧입히면서 한국인이 공감할만한 스토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가 히어로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감상평 후반부 스포일러가 포함된 부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초능력자'의 장점
'초능력자'의 장점 1 -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이 영화는 상당히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됩니다. 제가 새가슴이라 그런지 몰라도, 초능력자인 초인과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세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격전과 이야기 전개는 영화 후반부까지 긴장감을 유지시켜가며 120분을 결코 길지 않게 만듭니다. 다소 딱딱한 분위기만을 감수한다면 이 영화는 킬링타임용으로도 결코 나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참고로 저는 오늘 영화를 보고나서 '바.젖.남'이라는 신조어를 (저 혼자서만) 만들어냈는데요. 이는 바지가 젖은 남자의 준말로, 무언가에 푹 빠져 흐르는 땀에 바지가 젖어버린 남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뭐, 제 유머 센스는 제가 봐도 좀 부끄럽습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2 - 외국인 같지 않은 외국인 '버바'와 '알'
다시보는 버바와 알 시리즈, 니들이 짱드세요
저는 영화 정보를 그리 가지고 가지 않은지라, 왠 웃기는 외국인들이 나온다고만 알았지, 이렇게 친근하고 귀여운 두 외국인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인공 뺨치는 순박함에 잘 버무려진 사투리를 구사하는 버바와,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그럴싸하게(?)해서 대단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웃음이 유발되는 알은 영화 내내 소소한 웃음을 줍니다. 영화 후반부 이들의 퇴장에 가슴 아파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이거 원, 두 시간만에 왠 외국인 둘에게 내게 있는 모든 정을 퍼부은 듯한 기분이란...
이미 감상평 전반부에서 이야기했든 이 영화는 캐릭터를 참 잘 살렸는데요. 사실 어쩌면 고수가 맡은 임규남 역과 강동원이 맡은 초인 역보다 더 이 영화를 잘 살린 캐릭터가 바로 버바와 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외의 조연으로 전당포 사장님과 전당포 사장님 따님이 나오는데, 이 둘은 버바와 알로 인해 제 관심의 변두리로 무참히 밀려나게 됩니다.
버바와 알은 흡사 트랜스포머의 수다쟁이 형제 자동차들 같은 느낌을 준다랄까요.
정말 보다가 아놔 ㅋㅋㅋㅋㅋ 싶었습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3 - 불꽃튀는 두 주인공의 인물대결 & 캐릭터 대결
캐릭터에 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으니 넘어가고, 인물대결 역시 말 안 해도 다들 아실테니 넘어가렵니다. 그래도 장점 중에 장점이니 그냥 넘어가긴 뭐하드라구요. 서비스샷으로 고수 순박미소샷 하나 올라갑니다.
죄송합니다. 이 이후 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된, 아니 영화 전체를 포함한 부분이므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가급적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초능력자'의 장점 4 - 판타지 속에 내포된 한국 사회의 단면
뭐, 영화평 잘 보다가도 이 영화는 그 사회를 잘 드러냈다. 라고는 문단이 나오기 시작하면 사실 슬슬 스크롤이 빨라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부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 한국에서의 정의의 모습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시간 동안 정이 듬뿍 든 외국인 캐릭터 '알'은 초인을 잡으려 하는 규남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 있잖아. 이 일은 그 사람들이 할 일이야.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져. 경찰들이 못 잡으면, 검사도 있잖아. 그보다 더 높은 사람도 있잖아. 우리는 나서지 말자"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경찰들은, 그리고 더 높은 이들은 딱 한 시퀀스로 그러한 기대를 여실히 깎아내립니다. 사투 끝에 초인을 잡은 규남은 초인의 얼굴을 비닐봉투로 가린채 경찰서로 초인을 끌고 갑니다. 그러나 비닐을 벗기지 말라는 규남의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상사로 인해 초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탈출을 하고, 그 와중에 경찰은 자신의 총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보여지는 뉴스에서, 초인과 규남은 '갑자기 경찰서로 들어와 경찰의 총기를 강탈한 총기 탈취범'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규남의 말을 순순히 믿을 사람은 찾기 힘들겠지만, (CCTV를 본 두 부하 경찰은 어느정도 초인을 경계했지만) 어찌 되었건 믿지 못한 결과는 '총기 탈취범이 된 규남'이라니. 이는 늘 영화에서 볼 법한 히어로의 억울한 누명 아니겠습니까? 물론 비록 본의 아니었더라도 총을 가지고 간 규남도 잘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더불어 초능력에 의해 가는 곳마다 초인에게 총을 넘기는 경찰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힘 있는 자에게 참 쉽게 자신의 공권력을 넘기는 힘 없는 경찰의 모습인 듯 보여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아, 공권력 같은 단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절대 반정부주의자라던가 그런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현실이 이렇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들은 규남에게 우리가 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고 더 응원을 불어넣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진짜 한국 사회의 단면은 바로 주변인들로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중반부 초인과 규남의 사투 중, 초인은 비열한 기지를 발휘에 지하철 역에서 한 엄마로 하여금 아이를 철로로 던지게 만들어 규남을 철로로 뛰어들게 합니다. 다행히 아이를 규남, 그러나 그런 상황을 알리 없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있는 규남에게 싸대기 한 대를 작렬하고 아이를 데려 갑니다. 뭐, 모르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아기 엄마의 강렬한 스파이크 싸대기 때문인지 급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규남을 보고 지하철역의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아낄 수 밖에 없는 이유인 '의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자세'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남들과 다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였지만, 저는 그보다는 의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비록 초인이 남들과 다른 능력으로 어린 시절부터 고생과 외로움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초인을 이해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낼 순 없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포커스는 초인이 아닌 규남에게 맞추어져서 우리 사회에서 의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돈을 훔치고 규남을 제거하기 위해 또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초인은 이야기합니다.
"너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이들은 알지도 못 해. 이 사람들이 죽는건 모두 너 때문이라고."
그리고 현실과 현실의 악인들은 이야기합니다.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어차피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해.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거야. 니가 움직이면서 니가 다치고 니 주변사람들이 다쳐."
정작 누군가를 진정 다치게 만드는 원흉은 의인이 아니고 악인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마음이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 차츰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게 소중한 사람 또는 나에게 이러한 일이 닥치지 않는 이상 우리 또한 불의를 보고도 몸을 사리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것을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여기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현실의 비겁함 또한 이런 악인들의 가당찮은 변명을 합리화 시킵니다.
역무원이었던 김행균 씨가 구한 아이의 어머니는 (적어도 언론 상에는) 아직까지 김행균 씨에게 감사의 인사 한 번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냐는 김행균 씨의 사려깊은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보다 더한 사람들이 주변을 봐도 참 많습니다. 성추행 당한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성추행을 막아준 청년이 경찰서에 입건 되었는데도 증언 한 번 하지 않고 꼭꼭 숨어버린 여인, 심지어는 자신을 살려준 이에게 자신의 보따리를 책임지라는 속담 속의 그 대단한 분들, 나쁜 사람과 그를 막는 이 사이에서 마치 유튜브 공식 업로더인 듯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앵글까지 잡아가며 찍는 사람들.
누군가가 초인이 한 말을 답습해 이 영화를 평하더군요. 규남의 오지랍이 살인을 불렀다고 말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 밑 단락에는 진짜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심해주세요!
'초능력자'의 장점 5 - 그런 현실에서의 최상의 판타지
우리가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정의를 지키는 이들에게 갈증을 느껴가는 중에, 그나마 규남의 고군분투는 공감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영화 말미 휠체어를 탄 규남의 등장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합니다. 그가 구한 세상에서 그는 그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일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의인들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영화는 이런 현실에서 최상의 판타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아마 이 결말로 인해 이 영화 전체를 폄하하게 되는 분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영화 말미, 불구가 된 규남은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역에 와 있습니다. 바로 초인으로 인해 죽은 전당포 사장의 산소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 와중에 지하철 선로에 아이가 빠지게 됩니다. 지하철이 막 지하철로 드러서는 일촉즉발의 순간. 모두가 비명을 지를 뿐 무엇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규남이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치 초인이 초능력을 쓸 때처럼 화면이 '반짝반짝 눈이 부셔지더'니, 그 짧은 순간 규남은 아이를 구해 반대편 승강장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습게도 저는 이 장면에서 나름의 현실에 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처구니 없이 사그라드는 의인들. 규남의 마지막 휠체어에서의 모습은 그런 의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초인적인 힘으로 부활합니다.
이러한 장면을 비약이라 느낄 필요가 없어보이는 것은 사실 이 영화가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규남은 영화 속에서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트럭에 그대로 받치기도 하고, 지하철과 돌벽에 부딪혀 머리에서 말그대로 피를 쏟기도 하고, 칼에도 여러번 찔리고, 목도 조여봅니다. 사실 알고보면 규남 역시 초능력자였던 거 아닐까요? 그리고 그의 '각성'은 결국 그가 초인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끝까지 살아남아서, 네가 죽인만큼 내가 살려낼거야."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규남의 말에 대한 초인의 답처럼(수없는 변두리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온 규남을 보고) "니가 왜 그렇게 사는지 알 것 같다."는 답이 정답일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규남의 착한 마음은 결국 그를 또다른 초능력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영화에서는, 착한 사람에게 초능력이란 선물을 주는 것으로, 현실에서의 안타깝게 스러저가는 의인들을, 착한 마음들을 위로하고자 한게 아닐까요?
저는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결말마저도 좋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인에 대해서
영화 말미, "니 이름이 뭐냐?"라는 규남의 물음에 눈빛이 흔들리는 초인. 남들과 달라, 외로운 그. 마지막 규남의 독백처럼 만약 다른 공간에서 초인과 규남이 만났다면 그 둘이 공유할 수 있었을 무언가.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지만, '악인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비록 그의 삶이 어떠하였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그의 악행을 쉽게 용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또다른 악인이 등장하지 않게 하는데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들과 다른 인생은 어찌보면 초인이나, 규남이나, 버바와 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초인은 가공할만한 힘을 가져 조금 더 독특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구한 사연으로 악인이 된 이들을 볼때마다, 그보다 더 기구한 사연임에도 참으로 착한 이들에 대한 감사를. 그리고 악행은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구를 말입니다.
스포일러 끝입니다. 스크롤 내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영화 '초능력자'는, 잘 어우러진 캐릭터들과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박진감, 그리고 한국형 히어로물로서 어설프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는 적어도 9000원 내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영화입니다.
늘 뭔가 부족했던 고수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하나 더 구축해냈습니다. 자주 이미지가 우선이던 강동원 역시 강동원이 아우라가 아닌 초인이라는 캐릭터의 아우라를 통해 강동원이 아닌 캐릭터를 잘 표현해 영화를 받쳐주었습니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소소한 재미들과, 바.젖.남을 만드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은 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만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 여러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긴긴 감상문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감상문이지만 영화 감상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블로그를 통해 함께 생각을 나눌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 글들을 보시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덧글로 방명록글으로 제게 손 내밀어주세요^^
부족한 저의 생각이지만, 분명 손내밀어준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어 봅니다.
부족한 제 글 추천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추천 후 덧글 남겨주시면 확인하는대로 바로 답방해서 저 역시 블로그/홈피에 생기를 불어넣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부족한 제 감상평에 대해 지적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영화가 궁금한 분들께 더 도움이 되는 감상평이었으면 합니다^^
늘 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